여행 이야기

몽골 여행기(6) 마지막날 관광

renshu 2015. 7. 17. 13:30

 

아침 7시에 야외에서 천주교 미사가 있었다.

후배 아들이 몽골에서 신부로 봉직하고 있는데 일요일이라 일부러 멀리 이곳까지 와서 우리를 위해서

미사를 집전해 준 거다.

 

"난 기독교신자인데..." 했더니 괜찮으니 꼭 나오라고 한다.

 

(성당 일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린다는 강론을 하셨다.

 "하나님 난 여기까지 밖에 안 되요. 나중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안 해주시면 난 손을 뗄 거예요...."

하나님께 떼를 쓰면 저절로 일이 풀리더란다. 믿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거겠지.)

 

(개신교 신자에게는 영성체 대신 신부님이 우리 머리에 손을 얹고 축도를 해 주었다. "아멘")

 

이 신부가  운영하는 사회복지 기관의 식구들을 위해서 우리들은 모두 서울에서

깨끗한 헌옷들을 가지고 왔고

고맙다는 인사로 그 엄마가 우리모두에게 양모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 했다.

그리고 낮에 식사할 때 그곳에서 채취한 건고사리(만원)와 양말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두 켤레에 만원씩에

팔기도 했는데 나도 고사리와 양말 두 켤레를 샀다. 양말은 친구에게 줄 생각이다.

 

 

식당에서 아침에 얼큰하게 김치찌게를 끓여주었다. 돼지고기도 듬뿍 들어 있다.

입맛 없는데 모두들 맛있다하며 밥 말아서 다 먹는다.

 

황대현이 새벽 6시 반에  보청기 찾으러 혼자 산으로 가다가 돌아 왔다고 한다.

굳이 찾으로 간다하니까 양대장도 화가 나서  못 기다려 준다고

그럼 최명상과 둘이 알아서 시간 맞춰 공항으로 오든지 하라고 했다나?

 

산으로 올라가다가 생각해보니 여러사람 신경쓰게 하는게 미안했던지 포기하고 내려 왔다니 안심이다.

 

오늘은 느긋하게 시내 관광하며 하루를 보내게 되 있다.

짐 다 싸가지고 버스로 가져가려하는데 종업둰들이 달려들어 들고 가겠다고 한다.

 

확실히 1호차에 실었는지 확인하고 1$을 주었다.

그애들은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는듯이 받는다. (여기 사람들이 좀 뚝뚝한 거 같다.)

호텔같았으면 숙소에 팁을 놓고 나왔을텐데 가이드도 그런 얘기가 없었으니...

얘네들도 사실은 꼭 팁을 줘야 하는것은 아닌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주는 것 같지 않다.

그냥 말은 안 통해도 열심히 해 주니 내가 주고 싶은 거지. 수자도 당부를 했다  "1$ 꼭 줘" "알았어"

 

단체로, 기별로 사진 촬영을 하고 정들었던 게르촌을 떠난다.

 

(날씨가 꽤 쌀쌀했지만 나눠 준 옷을 입고 나오라 해서 노란 티 혹은 보라티, 검은 혹은 회색 점퍼를 입었다)

 

맨처음 들른 곳은 징기스칸 전망대.

너른 벌판에 크게 만들어 진 기마상. 개인이 만든 곳이라는데 입장료를 받으니

들어갈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 징기스칸의 배로 나와서 목으로 층계를 오르면

 말머리가 전망대인것 같다.

 

 ( 이 앞에서 사진들만 찍고 버스로 이동 )

 

 

 

울란바토르 중심가 징기스칸 광장으로 갔다.

오늘은 무슨 좋은 날인지 광장에선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고 태권도 시범을 보이려는지

도복입은 어린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다.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

 

                      (총동산악 홈피에서 얻어 온 사진)

 

매일 하는 행사인지 오늘만 특별히 하는것인지 고전 복장의 근위병들이 징기스칸 동상앞으로

행진해 나오기 시작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동상앞 계단에 도열. 손에 든 건 총인가 칼인가?

 

 박물관도 이 근처에 있다. (몽골의 역사유물이 다 있고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 알아 볼 수 있게

가이들들이 설명을 해 주었다. 사진 촬영금지라 내부는 못 찍었다)

 

몽골은 징기스칸 시대의 대 제국이 멸망하고 그 후 중국 청 강희재에 의해 내몽고와 외몽고로 쪼개져서

내몽고는 중국땅이 되었고 외몽고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몽골인민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중소전쟁시 중국보다 소련을 택한 후 소련의 영향권하에 있다가  민중의 봉기로 사회주의를 버리고

지금의 4년제 직선 대통령제의 민주공화국이 된 역사가 이 박물관에 다 전시되어 있다.

 

언어는 몽골어를 쓰는데 문자도 몽골문자가 있긴 했다는데 (꼬불 꼬불 지렁이 기어간 모양) 지금은

소련어를 차음하여 쓰고 있어 우리로선 간판을 전혀 읽을 수가 없다.

 

다시 차로 자이승 전망대로 이동.
러시아가 중국의 세력을 물리치고 몽골을 자기들의 세력권으로 넣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

   (높직히 있어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한다)

                         (총동산악 홈피에서 얻어 온 사진)

 

             (전망대 올라가는 초입)

 

(설명글 대신 그 과정을 그림으로 알기 쉽게 보여 준다)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 본 울란바토르 시내 전경)

 

(전망대 위에서 수자랑)

 

근처 이태준 기념공원으로 감.

주택들로 둘러 싸인 넓지 않은 공간에 표지석과 자그마한 기념관과 묘비가 있다.

 

세브란스 출신 우리나라 초대 의사 중 한 사람. 독립운동 하다 몽골로 망명.

병원을 차리고 당시 그곳에 만연하던 매독치료에 힘을 쓰고 많은 치료를 해 주어 그 곳 사람들의 추앙을 받음.

마지막 청 황제(복드칸?)의 주치으로도 활동하였으나 정권이 무너지며 39세에 백계러시안 군인들에게 사살됨.

 

 

2001년 몽골 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 공원 조성.

 

(시신없는 가묘일듯.)

 

첫날 묵었던 호텔옆 한식집에서  한정식으로 점심식사.

 동태찜이 큰 접시에 나왔고 불고기, 명이나물 장아찌, 두부샐러드등 반찬이 꽤 나왔다.

 

 

 

 

마침 생일 맞은 세 사람이 있어 케익 앞에서 노래부르고 축하 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동기 장영철과 총동 회장과 여자 후배등 세사람이다.

( 총동산악 싸이트에서 따옴)

 

생일 축하로 금점호가 장영철에게 양말을 선물하자 신호영도 자기가 산 여자용 양말을 부인에게 주라고 

선물했다. 저녁 식사시 장영철이 자축으로 우리동기들에게 생맥주 한 잔씩 샀다.

 

 이곳은 캐시미론 제품이 유명한 곳이다.

시간도 남아도니 충분히 골라서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머플러가 값도 저렴하고 선물용으로 무난해서 많이들 샀다.

(총동산악싸이트 김영석후배 게시글에서 따옴)

 

머플러 3개를 100$ 에 샀다. 서울에선 한 개 값이다.

(서울에 와서 아들 며느리 주니 며느리가 굳이 자기 몫으로 사온 체크 무늬를 마다하고 내몫으로 사온 자주색을

갖겠다고 한다. 내 건 좀 싼 것이라 해도 "어머니 요즘 누가 체크무늬를 해요. 전 이 색이 좋아요"...  취향을 미리 알고 갈 걸.)

 

저녁식사.

대형 식당에서 몽골식 징기스칸 샤브샤브. (사실 식당 운영자는 중국인인가 일본인인가 라지만..) 

(소고기 양고기 말고기를 끓는 육수에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다. 소스는 간장소스와 땅콩버터 소스.

말고기는 약간 질긴듯 했지만 양고기나 말고기 모두 냄새가 나지 않고 거부감을 못 느낄 정도다.

국수와 만두도 담궈 먹고 밥은 따로 볶은 밥이 나왔는데 많이들 남겼다.

다른 테이블에서 고기 더 먹으라고 가지고들 왔는데 배가 불러 못 먹었다.)

 

우리 14회는 13명이라 어차피 한 테이블에서 함께 먹을 수가 없다.

나와 수자는 다른 테이블에서 13회 최문자선배와 김영석후배와 함께 먹었다.

(수자는 남자동기들과 먹고 싶었겠지만 나 때문에 못 가 섭섭한 눈치.)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곳은 몽골 전통 예술극장.

 

몽골 전통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은 단조형태의 어두운 동양권의 음악과는 달리

서양음악처럼 모든 음이 다 살아 있는 밝은 음조라 신기했다.

 

특히 전통 현악기 馬頭琴을 연주하며 소리를 하는 남자의 음색이 특이하고 고음과 저음을 동시에 발하는

떨림 창법은 유네스코가 인정해줬다던가? 

오케스트라 연주. 창, 무용극, 서커스등 1시간 반 정도 공연. 

 

공연내용을 촬영하면 비싼 벌금문다고 해서 스마트 폰은 꺼내지도 않았다. 실제 요소요소에서

감시하는 종업원이 있다.

(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다듬지도 말고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매지도 말랬지.)

 

밤 12시에 공항 출발 귀국행.

기내에선 흰죽과 간식용 모찌떡을 주었다. 잠깐 잘듯말듯 하는 사이 3시간만에 인천 공항 도착.

우리 동기끼리 무사귀환 화이팅을 외치고 5시 반까지 기다려 공항버스로 귀가.

아들이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짐을 끌어줬다.

 

만족한 여행. 나처럼 외국 여행 기회가 별로 없는 사람에겐 이런 동창여행도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된다.

산행 임원진이며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

 

건강때문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해외 산행을 그만해야 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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